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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디자이너를 꿈꾸던 내가 게임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PROJECTS/Programming Journal 2025. 3. 30. 22:22

    나는 올해 만 25세 여성이다. 2018년에 부경대 공업디자인과에 현역으로 입학했지만, 2024년에 등록금을 내지 못해 미등록 제적이 되었다. 열악한 배경에 대학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적응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삶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도전으로, 국비지원 직업학원에서 유니티 게임 개발자 과정을 수료하고 있다.

     

    디자인과 나, 그리고 현실

    어릴 때부터 디자인은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이자 삶의 목표였다. 타고난 관찰력과 표현력 덕분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가정 형편상 미술학원을 다닐 수 없었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혼자 컴퓨터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익히며 학교 행사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내 재능을 키워 나갔다. 고등학교 시절 전국 청소년 예술제 그래픽 디자인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하고, 여러 대학의 입시 미술 대회에서도 입상하면서 디자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입시 미술을 준비해야 했지만, 집안 형편은 너무 열악했다. 제대로 된 보일러조차 없어 겨울엔 추위에 떨었고, 집안에 화장실마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불편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주말마다 서브웨이에서 하루 8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원을 다녔다. 그렇게 다니던 중, 고3 여름방학에 특강비 150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좌절헸다. 이제 정말 포기해야 하나 싶어 눈물을 머금고 학원 원장님께 솔직하게 사정을 털어놓았더니, 원장님께서 내 재능을 아까워하시며 대입까지 남은 기간 동안의 모든 학원비를 무료로 지원해 주셨다. 원장님의 믿음과 지원 덕분에 나는 더욱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극적으로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고통스러웠다. 예민하고 내성적인 내가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다니다보니 신체와 정신 건강이 악화되었고, 경제적 어려움은 끝없이 나를 압박했다. 결국 온갖 무방비한 상태에서 온갖 사건을 다 겪고 몸도 마음도 망가져버린 나는 결국 휴학일수도 다 써버리고 등록금을 낼 돈도 없어서(학자금 대출도 전부 거절됐다) 결국 미등록 제적 처리되고 말았다. 이후 자취할 돈도 없어 갈곳이 없어진 나는 경증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아버지도 생계급여 수급자로 매달 약 100만 원의 지원금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나는 대학 생활과 아르바이트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였고, 간단한 아르바이트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한동안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고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더 무력해졌고, 자존감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를 좌절의 늪에서 꺼내준 발더스 게이트3

    디자인 업계는 이미 공급이 넘치고 경쟁이 치열했다. 동기들은 졸업 후 경력을 쌓아가며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나는 나이와 경력 부족으로 취업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도 없었고, 경제적 여건상 무급 인턴조차 불가능했다. 빠르게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더스 게이트 3"이라는 게임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스트리머의 플레이 방식을 보고 답답해서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일주일 만에 50시간을 플레이하며 이 게임을 통해 나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능성과 매력을 느끼게 되었지만, 게임 개발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더 현실적인 고민 때문이었다.

    대학을 자퇴한 뒤 빠르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집 근처 전문대학 간호학과에 합격했지만, 경제적 지원 없이 막대한 학습량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국비 지원을 통해 유니티 게임 개발자 과정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은 6개월간 체계적이고 철저한 커리큘럼을 제공했으며, 비전공자도 소화 가능한 실무 중심 교육과 프로젝트 경험을 제공했다. 매월 지원금이 나왔기에 경제적 압박도 줄일 수 있었고, 과정 종료 후 적극적인 취업 지원도 이루어져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진 디자인 능력을 게임 개발에 접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점차 이 과정이 나의 새로운 가능성과 꿈을 펼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더스게이트3 가 제시해준 나의 새로운 가능성

    발더스 게이트 3를 플레이하며 처음 느낀 감정은 충격에 가까웠다. 단순히 게임이라는 오락이 아니라, 깊고 풍부한 서사와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일주일 만에 플레이 시간이 50시간을 넘겼고, 엔딩을 보면서 느낀 감동과 여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경험은 나에게 게임이 단지 오락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예술적 매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디자인에서 추구했던 창의성과 표현력을 게임 개발에서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나 역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 나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디자인을 떠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 선택이 현재 내게 주어진 최고의 길이라고 믿는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도 쌓을 예정이다. )

    나처럼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꿈을 수정하거나 바꿀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예상과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새로운 목표와 희망은 언제나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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